이 영상은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6분, 하이재커 5명에 의해 납치된 아메리칸 항공 11편이 승객과 승무원 87명(하이재커 포함 92명)을 태운 채 시속 790km의 속도로 제 1 세계무역센터(북쪽타워) 93~99층에 충돌한 순간을 기록한 독특한 영상입니다.
이 영상이 촬영된 현장에는 당시 뉴욕소방국 1대대 소속 엔진 7, 래더 1, 1대대 지휘반이 맨해튼 지역의 가스누출 의심 신고로 출동 중이었습니다. 이 충돌을 목격한 직후, 1대대는 9/11 테러 현장인 세계무역센터로 가장 먼저 도착한 뉴욕소방국 대원들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영상을 찍은 사람은 누구이며, 왜 소방대원들이 출동하는 과정에 포함되어 있을 수 있었을까요?"
프랑스계 미국인 Jules Naudet(1973년생)와 Gédéon Naudet(1970년생) 형제는 9/11 테러에 관한 영상을 촬영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뉴욕소방국의 신참 소방관들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형제는 1대대 소방대원들과 함께 뉴욕 소방서에서 숙식을 하면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우연한 상황에서 9/11 테러의 순간을 포착하게 되었습니다.
Antonios "Tony" Benetatos, 당시 신참 소방관이었으며 이 다큐의 원래 주인공으로 나타납니다. 토니는 2001년 7월 2일, 테러 공격이 2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뉴욕소방국 1대대 래더 1 소속으로 세계무역센터를 담당하는 지역으로 전입되었습니다. 이 다큐 영상에서는 토니가 막내 소방관으로서의 역할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청소부로부터 출발해 식사 준비와 커피 타기까지 모든 일을 열심히 수행하면서 첫 번째 화재 출동을 기다렸습니다.
당시 뉴욕소방국에서는 신참 대원이 새로 전입되면 흰구름(white cloud)과 먹구름(Black Cloud)으로 구분되었는데, 흰구름은 화재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속설과 연관지어 말하곤 했습니다. 토니는 흰구름 소방관으로 간주되었으며 처음 한 달 동안은 화재 출동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담당하는 지역에서 화재가 나지 않았다고 해서 토니는 흰구름 소방관으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8월쯤 되어서 자동차 화재진압에 참여하면서 토니는 첫 화재 출동을 경험하게 되었고, 선배 소방관들도 점점 그를 인정하며 마음을 열어갔습니다. 이렇게 토니는 꾸준한 훈련과 화재 출동을 통해 경험을 쌓아가며 9월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테러 8일전 9월 3일 고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선배의 조언을 듣는 토니. 뒤에 제1,2세계무역센터가 보인다.
2001년 9월 10일 밤, 1대대 대원들은 모두 모여 저녁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 모임에는 다큐의 주인공인 줄스도 함께 앉아 있었죠. 그날 밤 줄스는 프랑스식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약속하였으나 양 조절에 실패하여 대원들로부터 농담과 찐빠를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스는 밤새도록 대원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며 2001년 9월 10일 밤을 훌륭한 순간으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9월 11일로 돌아와서, 세계무역센터 북쪽타워에 속한 1대대 대원들은 빠른 속도로 모였습니다. 8시 50분, 건물 1층 로비에 위치한 지휘본부로 집결하였으며, 이 지휘본부는 19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당시 뉴욕 경찰과 소방의 협력 부재를 반성하여 설치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방송 및 통신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뉴욕소방국의 모든 대원들이 세계무역센터로 모이기 시작하였고, 대대 및 상위 지휘관들도 모두 소집되어 구조 및 화재진압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1대대 소속 엔진 7 및 래더 1 대원들을 포함한 소방대원들은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93층으로 가는 동안 20kg의 개인보호장비와 각종 구조 장비를 들고 걸어서 충돌 지점인 93층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쪽타워에서 구조활동이 개시될 준비를 하던 순간, 9시 3분에는 하이재커 5명에 의해 납치된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승객과 승무원 60명을 태운 채 시속 950km의 속도로 제 2 세계무역센터(남쪽타워)의 77~85층에 충돌하였습니다. 이 충돌 장면은 이미 아메리칸 항공 11편의 충돌로 모든 언론이 세계무역센터를 다루고 있던 중에 발생하였으며, 이후 우리가 미디어에서 보게 되는 대다수의 무역센터와 비행기 충돌 영상은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의 충돌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한편, 뉴욕소방국 국장인 Peter James Ganci Jr.도 현장에 도착하였으나, 건물에서 떨어지는 잔해로 인해 원래 지휘본부가 위치한 북쪽타워 로비가 아닌 웨스트가 지역에 새로운 본부를 설치하고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선 지휘관들은 여전히 북쪽타워 로비에 남아 있었으며, 이제는 추가로 남쪽타워의 구조 계획까지 세워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첫 번째 비행기가 북쪽타워에 충돌한 지 30분도 되지 않아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뉴욕소방관들에게 주어진 상황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7대대 인원과 교신을 시도하는 조지프 파이퍼(Joseph W. Pfeifer) 1대대장, 당시 7대대는 7대대장 오리오 팔머(Orio Joseph Palmer)대장 지휘 아래 남쪽타워 충돌지점으로 향하고 있었음. 7대대는 41층까지 작동하는 엘리베이터를 발견하였고 41층에서 도보로 충돌지점인 78층까지 도달함. 이후 팔머 대장은 78층에 수백명의 사상자가 있다는 보고를 하였고, 구조계획을 세우던 중 남쪽타워 붕괴로 사망함.)
1. 통신
북쪽타워에는 뉴욕 남부의 TV 및 무선전화를 관할하는 중계기 및 대형안테나가 설치되어있었음. 이 장치들은 당연히 비행기와의 충돌로 인해 먹통이 되었고 이로인해 각종 문제가 나타나게 됨. 우선 지휘관들은 건물로 진입시킨 대원들과 연락이 되지않고, 이미 진입한 대원들은 밖에 상황이 어떤지 파악 할수 없는데다가 혹시나 있을 대피 무전도 들을수 없게됨. 텔레비전 및 각종 무선연락도 먹통이 되어서 테러현장에 제일 가깝게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사람들보다 현재 상황을 모르게 됨.
그리고 지휘본부가 설치된 북쪽타워 로비엔 수십명의 뉴욕소방국 지휘관들과 일선 소방대원, 뉴욕 경찰 및 각종 기관 관계자들까지 수백명의 인원들이 몰려있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전기가 좁은 공간에 몰리면서 간섭현상을 일으키게 됨. 이로인해 중계기가 파괴되면서 악화된 통신상태가 더더욱 악화되는 문제를 야기함.
거기다가 비번인 소방대원들이 무전기를 챙기지 못한채 급하게 소집되면서 일선 지휘관들은 현장에 정확히 몇명의 소방관들이 있는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게 됨.
이러한 통신상의 난맥은 오전 9시 59분 남쪽타워 붕괴가 되고 건물 잔해로 인해 북쪽타워 로비에 설치된 지휘본부 인원들이 긴급철수하면서 북쪽타워에 진입한 대원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렸음에도 많은 소방대원들이 무전을 듣지 못하고 북쪽 타워 붕괴할때 매몰
됨. 결국 총 342명의 소방관이 1,2무역센터가 붕괴할때 매몰되어 사망함.
2. 낙하물
아메리칸 항공 11편과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은 승객뿐만 아니라 수만 리터의 항공유를 싣고있었으며,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했을때 수천개의 파편이 지상에 흩뿌려지고 충돌시 미처 연소되지못한 항공유까지 지나가던 시민들에게 도달함. 이후에도 충돌지점에 발생한 화재로 잔해가 계속 지상으로 추락하게됨. 이 잔해로 인해 부상입은 사람도 수십명이 되었고 대피에도 지장이 생김.
그리고 충돌지점 상층부 인원들이 북쪽타워에서는 약 1426명, 남쪽타워에서는 약 600여명이 있었는데 북쪽타워에는 충돌시 계단이 모두 파괴되어 한명도 탈출하지 못했고, 남쪽타워에서는 살아남은 한개의 계단으로 18명만이 탈출함. 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 화재의 열기와 유독가스를 버티지 못하고 한명씩 뛰어내리게 되고 약 200여명이 이렇게 뛰어내려서 사망한걸로 추정됨. 그리고 9시 30분경에는 이렇게 추락한 희생자에 맞아서 소방관 1명이 순직함.
(대니얼 수얼(Daniel Thomas "Danny" Suhr) 순직 당시 37세로 엔진 216 소속 소방관이었음. 대니얼은 9.11테러로 순직한 343명의 뉴욕 소방관 중 첫번째 순직자였으며, 유일하게 붕괴로 인한 매몰 이외의 사유로 사망한 소방관이 됨.)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북쪽로비에 설치된 지휘본부에서는 지상 출입구 통행을 금지하였고, 이렇게 되자 지원 온 소방력들도 건물에 접근하기 힘들어지는데다가 대피해야하는 시민들도 지하까지 내려가서 대피하는 등 대피루트가 좀 더 복잡해짐.
(북쪽타워 로비에 첫번째로 설치된 뉴욕소방국 지휘본부, 사진에는 잘 나오지않았지만 바로 뒷편이 1993년 폭탄테러에 대한 교훈으로 설치된 통합방재본부이다. 방재본부에는 건물 곳곳과 연결되는 통신장치 및 방송장치등이 설치되어있었음.)
3. 지휘체계
뉴욕소방국 한개의 대대에는 약 180명에서 200명의 소방관과 지휘관들이 소속되어있고, 보통 4개에서 8개의 중대로 이루어짐. 중대는 Captain이 지휘하며, 이들은 3명의 lieutenant와 16명에서 42명의 소방관을 지휘함. 따라서 한개의 근무조에는 현장지휘관인 Captain과 lieutenant에 각각의 차량에 편성된 대원들이 편성되고, 엔진중대에는 3,4명의 소방관, 래더중대에는 5명의 소방관이 편성되어 한개의 근무조를 이룸.
테러가 일어난 세계무역센터에는 첫번째 충돌이후 3시간동안 121개의 엔진중대(Comapny), 62개의 래더중대, 5개의 구조대, 27명의 대대장(Battalion) 이상급 지휘관이 집결하였고, 모든 비번 소방관들도 소집되었으며, 이러한 소집령은 30년만에 내려진 명령이었음.
1차로 설치된 지휘본부는 오전 8시 50분 북쪽타워 로비에 설치되었으며, 조지프 파이퍼 1대대장을 포함한 일선 대대장들 위주로 구성되었음. 그리고 2차로 설치된 지휘본부는 뉴욕소방국 최선임자인 피터 간치(Peter James Ganci Jr.)국장과 참모들로 구성되어있었으며 이들은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남쪽타워에 충돌하기 직전인 오전 9시경에 현장에 도착하여 북쪽타워 길 건너편인 웨스트가에 본부를 설치함.
이들은 1,2번에서 언급한 문제로 효율적인 지휘를 하기 어려웠으며, 현장에서 이원화된 지휘체계로 인해 조직적으로 구조활동을 할수가 없었음.
이 후 오전 9시 59분에 남쪽타워 붕괴로 인해 북쪽타워에 설치된 지휘본부 인원들이 긴급철수하며 지휘본부의 기능을 상실함.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웨스트가 지휘본부는 잔해에 휩쓸리며 피터 간치 국장 및 참모들도 모두 사망하게 되었고 결국 지휘체계가 붕괴함.
북쪽타워에서 탈출한 지휘관들은 기존 지휘본부가 설치되었던 웨스트가로 향하고 다시 지휘본부를 구성하려했으나 오전 10시 29분에 북쪽타워마저 붕괴하면서 지휘공백상태가 계속 이어지게됨.
이 후 소방국장의 실종이 확인되면서 차석 지휘관들이 지휘본부를 설치하였으나 통신이 제대로 되지않고 서로의 생사도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 지휘본부들이 난립하게 됨. 약 1시간동안 8개의 지휘본부가 설치되었으며 이러한 지휘본부의 형태는 상위지휘관들이 현장에 있는 하위 지휘관 및 현장대원들을 불러모아 설치한 주먹구구식의 지휘본부들이었음. 이러한 지휘상의 혼란은 통신이 재개되고 상황이 정리되는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웨스트가에 모든 지휘본부를 일원화하여 설치하면서 일단락됨.
(세계무역센터 붕괴 현장에서 구조작업에 참여한 인원들은 마지막까지 서있었던 기둥에 뉴욕경찰,소방 및 각종 관계기관 희생자 수를 적어놓았음. 이 기둥은 나중에 추모공원내로 이동하여 전시되게 됨)
제 1,2 세계무역센터와 여객기의 충돌, 이어진 세계무역센터들의 붕괴로 뉴욕소방국에서는 최선임자인 뉴욕소방국 국장을 포함한 343명의 소방관들이 사망하는 큰 피해를 입게됨. 하지만 이들의 필사적인 구조활동 및 대피지원으로 평일 유동인구 5만명인 맨해튼에서 사망자 3천명선으로 억제할 수있었으니 이들의 죽음은 전혀 헛되지 않았음.
뉴욕소방국의 약 75개의 Firehouse(우리나라의 소방서 및 119안전센터)에서 최소 1명이상의 사망자가 나왔으며, 국장과 소방위원회 부위원장, 1명의 marshal(우리나라의 특별사법경찰), 1명의 소방사제(우리나라의 군종신부로 생각하면 됨)가 사망하였음.
단위 부대로는 래더 3, 레스큐 1, 스쿼드 1 중대는 차량 소속 모든 근무조 대원이 전원 사망하였으며, 대대장급인 Chief 17명, 중대장급인 Captain 23명, 현장지휘관인 Lieutenant 44명이 사망함.
(9.11 추모공원에 전시된 래더 3 차량. 래더 3 는 북쪽타워가 붕괴하면서 중대원 11명 전원 사망하였음. 이 후 현장에서 발견된 차량은 보존처리 후 추모공원에 전시되게 됨.)
다시 영상얘기로 돌아오면 줄스와 함께 출동나간 엔진 1, 래더 7 대원들은 북쪽타워에 진입하였으나 다행히도 파이퍼 대장의 긴급탈출명령 무전을 수신하여 탈출함. 그래서 첫번째 충돌을 목격하고 제일 먼저 사고현장에 도착한 1대대 인원들은 아무도 다치지않고 전원 생존하여 복귀함.
조지프 파이퍼 대장은 이후에도 진급을 하면서도, 뉴욕에서 발생한 사고현장을 종횡무진함. 그리고 2018년에 퇴직하는데 파이퍼 대장은 9.11테러 당시 대대장 중 마지막으로 퇴직한 인원이 됨. 이 후 2023년 2월에 신임 뉴욕소방 소방위원회 위원장이 부위원장으로 파이퍼를 지명하면서 뉴욕소방국에서 두번째로 높은 계급으로 다시 현장으로 복귀함.
원래 찍으려던 다큐의 주인공인 토니는 현재까지도 뉴욕 소방대원으로 근무하고있음.
줄스와 기디온 형제는 이후에도 다양한 주제로 다큐를 찍음. 2018년에는 2015년에 벌어진 ISIS의 파리테러관련 다큐를 제작하였고 2022년에는 2021년 벌어진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사건을 주제로한 다큐를 제작하기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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